본문 바로가기
부동산

어릴 때 매우 가난했던 우리집 (부동산투자,70년대 월급) #1

by 하주노 2021. 12. 15.
반응형

이런 내용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어 하시는 초년생분들에게도 간접 경험이 될 겁니다. 저도 물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가 되는 거죠. 재미로 70년대 월급 이야기나 부동산 투자 이야기도 곁들이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산 반여2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꽤나 높은 고바위 산동네죠. 부모님은 결혼하면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셨고, 특히 아버지는 월급 받는 걸로는 부산에서 정착하기도 힘들고 돈이 없어서 빚을 좀 내어서 결혼했다가 결혼 후에 어머니께 빚이 있는 걸 숨겨서 크게 혼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경제권은 우리 어머니께 다 뺏기게 된 거죠. 결혼 자금이 없어서 빚을 낼 정도였으니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 부산 반여2동 쪽은 거의 산동네였고, 대충 지어진 흙집도 많았습니다. 매우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우리 아버지 직장은 지금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 다니셨음에도 월급이 7~8만 원 정도였습니다. 단칸방이지만 집 한 채에 300만 원 하던 시절이었니 조금 좋은 집은 500~600 정도 했다고 하네요. 돌아보면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열심히 모으면 집을 사기에는 어렵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하네요~ 아마 70년대 월급이 궁금해서 찾아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참고하세요~

참고로 70년대 후반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월급의 차이도 있었을 테니 서울이 아닌 부산이라서 월급의 차이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자린고비셨고,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300만 원짜리 집을 사시면서 우리 어머니의 부동산 투자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거의 1년마다 이사를 다니시면서 100만 원 50만 원씩 차익을 남기면서 3년 정도 뒤에는 2층짜리 주택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때 제가 7~8살 정도 되던 시절이네요. 그때의 기억이 어릴 때처럼 생생하네요. 저는 특이하게도 기억력이 남보다 뛰어난 편이라서 어릴 때 기억이나 지나간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합니다. 어머니는 당시에 뭘 해도 다 되던 시절이었다고, 아버지는 월급을 거의 못 가져다주었지만 맞벌이하면서 혹은 조그마한 단칸방 딸린 구멍가게 같은 슈퍼를 하면서도 열심히 버셨습니다. 장사도 잘하셨죠.

 

그때 반여2동 파출소 옆에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거기가 삼거리에 위치했었는데, 거기 파시고 나서 바로 위에 삼거리 위쪽 오른편에 위치한 길가에 있는 2층짜리 주택을 사시면서 이사를 가게 되었죠. 그때는 그 삼거리가 차가 다니긴 했었지만 비포장 도로였고, 차가 거의 없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거의 웬만한 길들은 다 흙길이었죠. 그 2층짜리 주택에서 살았던 기억들도 생생하네요~ 에피소드들도 많았고 저에게는 하나하나 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들이죠~ 설령 당시에는 힘들었더라도 지나고 나면 다 행복한 추억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운이 여기서 슬슬 꺾이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맞벌이하시면서 당시에는 방 3개짜리 집이면 방 2개를 세를 줬었습니다. 즉 방 3개짜리 집인데도 우린 늘 한방에서 단칸방처럼 살았었죠. 저는 태어나서 11살까지는 늘 단칸방에서 지냈던 겁니다. 일단 그 주택을 누군가 웃돈을 주고 사겠다 하셔서 괜찮은 시세에 팔면서 바로 옆에 비둘기 아파트라는 4층에서 5층 정도 되는 아파트로 이사를 갑니다. 드디어 아파트로 입성을 하게 된 거죠. 여긴 재송동과 반여2동의 경계지점이었죠. 비둘기 아파트는 방 두 개 짜리 집이었습니다. 방 하나는 신발공장 다니는 제주도 누나들한테 세를 줬던 게 기억이 나네요. 또 거실이 미닫이문이 있었는데 그 거실을 또 하나의 방으로 활용해서 당시에 어떤 아줌마랑 제 나이 또래의 아들 모자에게 세를 줬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이의 삼촌이 와서 아이에게 맛있는 거 사준다고 데리고 나가는데 저희 형제 보고도 같이 가자는 거예요. 저랑 제 동생은 좋다고 따라가서 동네 가게에 가서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하네요. 그 아이는 삼촌이니까 마음껏 고르는데 우리는 눈치가 보여서 100원짜리 고르고 싶었는데 50원짜리 골랐던 기억이 나네요~ 어릴 때부터 참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았습니다.

 

그 뒤로는 세 들어 사는 그 아이가 참 부러운 거예요~ 참 어린아이의 심리란~^^;; 물론 저도 삼촌이랑 할머니가 근처에 살아서 다들 가난했지만 그래도 뭐 해달라고 하면 다 해주시는 분들이었는데요~ 그런 말을 하는 총명함은 없었던 듯합니다. 숙맥이었죠. 단지 기억력이 좋고 언어 쪽이 발달 한 평범한 한 아이였던 거죠. 여담이 길었네요~^^ 저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너무 기분이 좋아지고 더 많이 쓰고 싶지만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줄이겠습니다^^;; 그 아이는 몇 개월 안 살고 엄마랑 나갔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어서 잠시 세를 들어 살았나 보더라고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 어머니가 파셨던 그 주택 바로 앞으로 드디어 그 동네에서 아스팔트 도로가 생겨납니다. 어머니가 파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웃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셨던 분은 정보가 있었던걸 지도....

 

어릴 때 매우 가난했던 우리 집 부동산 투자, 70년대 월급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2편에서 다시 쓰겠습니다~^^;;

반응형

댓글